상식정보

레오나르도다빈치 초기생애

ehdaudzns189 2021. 1. 4. 23:00

레오나르도다빈치 초기생애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이탈리아어: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석학(polymath)입니다.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건설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여러 작품중 오늘날 제일 잘 알려진 것은 모나리자입니다. 모나리자 없이는 루브르 박물관을 논할 수 없다는 평성이 존재할 만큼 모나리자라는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며, 전세계적으로도 제일 널리 밝혀진 매우 잘 알려진 그림입니다. 

그외에도 종말의 만찬은 그의 대표작으로 세기의 명작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2007년 11월에 네이처 지가 선정한 인류흐름을 바꾼 10명의 천재중에 제일 창의적인 인물 일등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등극하였습니다. 

네이처는 과학 전문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과학자를 일등에 뽑을것이라는 모두의 전망을 뒤엎는 결과였으며 2위는 세익스피어였고,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간신히 6위를 등극하였습니다. 르네상스형 만능인 다빈치가 지금까지 제일 창의적인 융합형 인재로 평가된겁니다. 

 

그는 평생 기술과 과학 그리고 예술을 단독으로 융합하려는 창의적인 공로를 끓임없이 하였습니다.

 

초기 생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토요일 밤 3시에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Vinci)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빈치의 태어난 시간까지 또렷히 알수 있는것은 공증인이었던 그의 조부 세르 안토니오의 직업적인 습관때문입니다. 그의 조부는 막중한 일들을 공증문서 노트 뒷 여백에 기록해두곤 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피에로 다 빈치(Piero da Vinci)는 법률가들을 배출한 지주 가문 출신으로 직업은 공증인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가난한 가족의 딸이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부친의 연령 23살로 결혼전이었으나 생모는 사회적 신분이 낮았고 지참금을 낼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가족 출신이었기에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못하였습니다.

 

다빈치(Vinci)는 현 피렌체 중심으로부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25km 내려간곳으로 아르노 강의 여러 지류중 위쪽에 자리한 산골 부락입니다.

현재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대와 똑같게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들이 많이 있는 지역입니다.

 

다빈치의 생가는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1년에 약 50만명 가량의 방문객들이 레오나르도 박물관과 생가를 찾는입니다.

 

성장기

다빈치를 낳은뒤 8개월후 친부는 16살짜리 처녀 알비에라와 결혼하였고 생모 카타리나는 수도원의 도기 가마공과 결혼하여 캄포제피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다빈치는 초기에 생모와 함께 생활하였는데 결혼한 아빠가 계모 알비에라 사이에서 자식을 얻지 못하자 다빈치는 본가에 들어가 살아남게 되고 있습니다. 

다빈치의 어린시절에 대해서 밝혀진것이 많치는 않으나 1457년 경의 과세 기록에 따른다면 부친과 한집에 살고 있었음을 알수있습니다.

 

이 시기에 다빈치를 양육한 이는 조부모와 다빈치의 숙부였습니다.

아버지 피에로가 피렌체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지역 공증인과 동업을 하게 되면서 집을 자주 비우고 피렌체로 나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던중 계모 알비에라는 자식을 낳지 못한채 1464년에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1465년, 그의 친부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의 딸과 재혼했으나 신규의 계모 역시 아이 없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이후에 아버지 피에로는 두 차례 더 재혼하였고 이때 아이를 많이 낳은 덕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두 12명이나 되는 이복 형제가 생겼습니다.

이들과는 훗날 상속문제를 두고 법적인 소송을 치루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