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개요 내용 영향력
목민심서
크기가 가로 15.0cm, 세로 22.0cm의 서책으로 1818년에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장서각에 일부 소장되어 있고 필사본(49권 16책중 7~9권 1책)은 단국대학교 퇴계기념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목민심서는 1818년(순조 18년)에 정약용이 지방관을 비롯한 관리의 올바른 마음가짐 및 몸가짐에 대해 기록한 행정지침표로 여유당전서권 16~29에 수록된 책입니다.
개요
목민심서는 목민관으로 불리는 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입니다.
이 책 역시 국가 재정의 초석이 되는 농민의 생산과 경제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수령 직무 54개 조 중에서 제일 순탄치않은 일을 전정으로 보고 양전에서의 각종 폐해를 지적하면서 그 개혁 방식 및 방법을 전론에서 결론지었습니다.
정약용은 조세 관리하는 것에서 농민과 나라의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협잡을 제거하자는 방향에서 개혁을 논합니다.
그와 함께 그 시정책의 일방적으로 공물 제재를 들고 대동법의 모순 확장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모순을 빼는 데 제도적 개혁과 정기적으로의 구속을 기본으로 하지만, 국가 재정의 정비, 관료들의 절약과 청백 사상에 따른 윤리적 제약과 함께 관리의 합리화에서도 그것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부패의 극에 달한 조선 후기 지방의 사회 상태와 정치의 실제를 민생 문제 및 수령의 본무와 결부시켜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명저입니다.
이 책은 다산이 57세 되던 해에 저술한 책으로서, 그가 신유사옥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19년간 귀양살이를 하던 중 풀려난 해인 1818년(순조 18)에 끝마친 겁니다.
목민심서는 다산 정약용이 지방관의 윤리적 각성과 농민 경제의 발전을 다룬 것으로, 강진에 귀양 가 있는 동안 저술한 책입니다.
주요 내용은 지방의 관리로서 수령이 백성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조선과 중국(China)의 역사서를 비롯한 여러 책에서 뽑은 것들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나라의 행정력이 지방에까지 고루 미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령들이 행정뿐만 아니라 사법권도 보유하고 있었고 그 권한이 막강하였습니다.
내용
내용은 모두 12강으로 나누고, 각 강을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제 1편의 부임, 제 2편의 율기, 제 3편의 봉공, 제 4편의 애민은 지방관의 기본모습에 대해 논했는데, 지방관은 백성과 제일 가까운 직책이기 때문에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덕행, 신망,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임명해야 하며, 청렴과 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부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하며, 백성에 대한 봉사마음을 기반으로 나라의 정령을 두루 알리고, 민의를 상부에 잘 전달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애휼정치에 힘사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제 5편의 이전, 제 6편의 호전, 제 7편의 예전, 제 8편의 병전, 제 9편의 형전, 제 10편의 공전은 경국대전의 6전을 기준에 의하면 지방관이 실천해야 할 방책을 논했습니다.
즉 이전의 경우, 아전, 군교, 문졸의 단속을 엄중히 하고 지방관의 보좌역인 좌수와 별감의 임용을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호전은 전정, 세정, 부역을 공평하게 운영하고, 권농, 흥산에 힘쓰며, 예전에서는 예법과 교화, 흥학을 강조하였습니다.
병전에서는 당시 민폐가 심하였던 첨정, 수포의 법을 폐지하고 군안을 다시 정리하며 평소에 군졸을 훈련시킬 것을 논하였습니다.
형전은 형옥(형벌과 감옥)의 신중을, 공전은 산림, 천택, 영전의 합리적 운영을 제시하였습니다. 막판으로 진황과 해관 2편은 빈민구제의 진황정책과 지방관이 임기가 끝나 교체되는 과정을 쓴 겁니다.